오늘 외출하면서 추억의 소독차를 보았어요. 어릴 적 골목마다 다니던 차들을 졸졸졸 따라다녔던 기억이 났습니다. 다행히 이집트 아이들은 따라다니지 않네요.
아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손으로 막았지만 저는 이상하게 이 냄새가 좋았어요. 머리로는 안 좋은 걸 알지만 추억을 소환하는 냄새이기 때문인지 눈은 따가웠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아들에게 그리운 추억은 무엇일까 궁금해졌어요.
"너에게 좋은 추억이나 그리운 건 뭐야?"
제 물음에 아들은 슬픔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어요.
"나는 떡볶이랑 순대랑 아주 사소하게 매일 먹을 수 있는 한국음식이야"
아들의 묘하게 원망석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들은 이집트로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변화를 두려워하는 성격 탓에 어릴 때부터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많이 힘들었던 아이였는데, 완전히 새로운 땅으로 와버렸으니... 마음이 힘들었겠다 생각하니 처음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좀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던 제 마음과는 별개로 무조건 받아들여야만 했던 아들, 그저 묵묵히 따라준 것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너무 강한 엄마는 아니었을까?
한국에서 가게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몸도 마음대로 아플 수가 없었어요. 자영업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몸이 조금 안 좋아도 일을 하다 보면 정신없이 지나가는 날이 많아 나도 모르게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처음 이집트에 왔을 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하루가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효율적인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 내가 이집트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했던 것은 아무런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구나"
조금은 어려운 문제이지만 계속해서 생각해야 할 듯합니다. 사는 곳이 이집트건 한국이건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 것 같아요.
아들은 제게 물었습니다
"한국에서 엄마성을 따라 한국이름으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나는 한국인처럼 생겨서 아무도 내가 혼혈인걸 모르지 않았을까?"
오늘 11살 아들의 마음속도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름 때문에 외국인 취급을 받았고 이집트에서는 동양인 외모 때문에 외국인 취급을 받습니다. 한국과 이집트 두 나라의 피가 흐르지만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는 아이!
아들에게 평생 풀어야 할 숙제를 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슬프네요. 아이에게 쉽고 편한 길을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자책도 해보지만 바꿀 수 없잖아요. 그렇다면 당당하게 멋지게 키우는 일만 남았습니다.
내일은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줘야겠습니다. 칭찬도 잔뜩 해주고 많이많이 웃어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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