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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 in egypt

벌써 8개월, 지금껏 살아본 결과..

by 오늘도 긍정 2025. 3. 11.

처음 이집트로 오기로 결정하기까지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어요. 8년 동안 운영하던 케밥집에 불이 나면서 건물주는 이때다 싶었는지 가게를 빨리 빼라고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월세를 자주 밀렸던 데다 불까지 나게 했으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죠. 코로나 이전 가게는 많은 외국인 손님들로 북적거렸었지만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팬데믹은 제 삶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는 상승하고 도저히 가게에서 나오는 수익으로는 생활이 안되기에 남편은 다른 일을 해야 했고, 저는 직원도 없는 1인사장이 되었습니다. 누적된 피로, 지친 마음을 끌고 가던 중 발생한 화재! 머리가 멍해지며 저는 "쉬고 싶다"를 간절하게 바랐던 거 같아요.

그러던 중 남편이 "이집트로 가는 게 어때?"라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제가 생각하는 이집트는 티브이에서 이야기하는, 여성의 인권이 바닥인 무슬림 국가, 멋진 피라미드가 있는 관광의 나라, 딱 그 정도였던 거 같아요.
궁지에 몰린 저는 "어쩜 새로운 시도가 될지 몰라. 안될 거 없잖아. 아이에게도 아빠의 나라를 알려줘야지"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갔습니다.
이집트에서 산다는 것은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어요. 여행자로서 잠시 머무는 것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그렇지만 용기를 내어 이집트로 왔고 벌써 이집트생활 8개월 차가 되었습니다.


처음 카이로 공항에 내렸을 때, 작고 소박한 공항의 모습에 오히려 정감이 느껴졌어요. 관광의 나라답게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공항 안 물가는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어요.
계약금만 지불한 집에 바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했지만 예약한 숙소는 이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고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기에 예약을 취소하고 돈을 돌려받기까지 카이로 공항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진땀을 빼던 것이 기억납니다. 다시는 에어비앤비 이용할 일은 없을 듯합니다.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문을 나서는 순간, 숨이 꽉 막혀오는 더운 공기가 마치 거대한 여정의 서막을 알리는 듯했습니다. "하하하 이집트에 온 걸 환영해! 진짜 사막이 무언지 알려주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뜨거운 공기, 경적이 울리는 도로, 여기저기 공사 중인 빈집 같은 건물들,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 등 모든 것이 정신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겁도 났었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 같아요. 돌아갈 곳이 없는 선택이었기에 제 마음은 100% 열려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이집트의 날씨는 대단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이집트 생활! 8개월이 된 지금 어땠냐고 물으신다면 저의 대답은 100점 중 80점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이집트 사람들 친절한 듯 하지만 한국 같은 정은 찾기 어렵습니다. 흔히 정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좋은 오지랖은 이집트에는 없어요. 오히려 개인의 사생활을 엄청 존중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남이 무엇을 하건 참견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안 되는 일도 약간의 정성(?)을 보이면 금방 해결되고 아는 공무원이 있어도 아주 유용합니다, 남편이 운전면허증을 재발급해야 했었는데 아는 고향친구 찬스로 바로 발급받았어요. 제 입장에서는 좋지만 나라 전체가 이런 모습이라면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두 번째로 이집트 사람들은 일처리 할 때 시간개념이 명확하지 않아요. 이사 온 집에 주방을 만들려고 업체를 골라 치수를 재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을 지불했습니다. 2주면 모든 게 끝난다고 말했던 사람은 회사를 그만두었고 아무도 주방을 설치하러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전화는 받아요. "이번 주 금요일에 갈게. 다음 주에 갈게. 너네 너무 견적이 싸서 시공해도 나 이득이 없어. 그냥 시공 안 할래" 급기야는 황당한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우여골절 끝에 주방은 80% 시공된 상태로 받아들였고 시공 못한 부분에 대한 돈은 남편이 알고 있는 세무직원의 도움으로 돌려 받았어요. 이집트에서 아무리 흥정을 잘해도 약속이 안 지켜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니다는 말을 곱씹게 되는 나라 같아요.

이집트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인샬라"인데요 이는 신이 원하신다면 이루어질 거야 라는 의미예요. 그래서 약속을 잡아도 정확한 시간이 없고 언젠가는 해결되겠지, 이 일이 안된 건 신의 뜻이 아닐지도 몰라 라는 의미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이집트에서의 삶은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게 저를 바꾸어주었어요. 한국에서의 효율적, 빨리빨리 같은 개념은 통하지 않는 나라, 그저 이런저런 삶 자체를 즐겨야 하는 나라! 이것이 지금껏 느낀 이집트입니다.

세 번째로 이집트의 바람에서는 흙맛이 납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회색 아니면 황토색이었는데 워낙 흙바람이 심하다 보니 제아무리 예쁜 컬러라 해도 몇 달이 지나면 그 선명한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듯 보였습니다. 하루종일 창문을 열어두면 방바닥에 뽀얗게 흙이 쌓이고 하루 입은 옷을 빨아도 흙물이 나오고 샤워필터가 이틀 만에 흙색으로 물들어버립니다. 그래도 신기한 건 아들의 비염은 더 좋아졌어요. 흙바람과 한국의 미세 먼지를 맞바꾼 느낌입니다.

네 번째로 이집트는 정전이 자주 발생해요. 제가 사는 컴파운드는 꽤 규모가 커서 자가 발전기를 갖추고 있다고 들었었는데 그래도 한 달에 2,3 번은 정전이 됩니다. 이럴 때는 핸드폰 불빛으로 장난을 치거나 불 꺼진 컴파운드를 산책하곤 합니다. 불이 꺼져도 휘영청 커다란 달님이 워낙 밝아서 남편에게 물어보니 본인이 어릴 적에는 달빛이 너무 밝아 커튼을 쳐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아직도 해결할 일들이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저는 이집트 생활이 좋습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제가 한국에서 처럼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준비가 되면 일도 하면서 오래오래 지내고 싶어요.
한국처럼 편리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편리하고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주는 나라!
신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주는 나라!


사진 같은 차가 아직도 굴러다니는 나라지만 누군가 제게 "이집트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보는 거 추천할만해?"라고 묻는 다면, 저는 적극 권장하고 싶을 정도로 이집트는 묘한 매력이 있는 나라인 것 같습니다. 오래 살아도 좋은 나라이지만 살던 곳을 오랫동안 떠난다는 건 아주 어려운 선택이니까요^^